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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13 03:41
현대重 노조 또 `폭력 난동`…문 부수고 소화기 터뜨려
 글쓴이 : 손언도
조회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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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연루자 징계위 열리던 날
교육장 침입해 직원들 내쫓고
쇠파이프 휘두르며 집기 부숴

노조 20일새 폭력행사 다섯번


12일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해양공장의 한 컨테이너 휴게실에 들어가 직원들을 쫓아낸 뒤 의자와 테이블 등 각종 집기를 파손하고, 해양기술관 안전교육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출입문과 유리창 등을 부수는 등 폭력 사태가 이어졌다. [사진 제공 =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노조가 12일 또 폭력을 휘두르면서 회사가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서울 계동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경찰 10여 명을 폭행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20일간 노조의 폭력행사는 벌써 다섯 번째다. 나흘에 한 번꼴로 사업장이 폭력사태로 얼룩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날은 앞서 발생했던 노조원들의 폭행 사건에 대해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인사위 도중에 노조 측은 또다시 사측 관계자들과 충돌하고 회사 집기를 파손하는 등 폭력 사태를 벌였다. 현대중공업 노조조차 일부 노조원들의 잇단 일탈 행위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에서는 사내 폭행사건에 대한 인사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앞서 지난 3일 파업 노조원들이 사측 관리자를 공장 바닥에 넘어뜨려 골절상을 입히고, 노조원 간에도 폭행사건이 발생했던 것과 관련해 인사 조치를 논의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날 노조는 해양플랜트 노조원을 대상으로 오후 4시간 부분파업을 하고 해양공장 본관 앞에 오후 1시 30분께 집결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안전교육을 받고 있던 교육장에 모인 파업 노조원들은 교육장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사측과 폭력사태를 빚었다. 사측 관리자들이 건물 문을 잠그자 노조원들이 벽돌과 쇠파이프, 각목을 휘둘러 강화유리창을 부수고, 노조원 40여 명이 교육장 안으로 진입했다는 게 사측 주장이다.

사측 관계자는 "교육장에 진입한 노조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직원들에게 욕설과 협박을 하고 교육장 집기를 파손했다"며 "이 과정에서 휴대전화 촬영과 교육장 진입을 막는 관리자들과 충돌이 있었고, 일부 관리자들은 찰과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50분께 또 다른 노조원들은 해양공장 컨테이너 휴게실 진입을 시도했다. 휴게실 안에서 문을 잠그자 노조원들은 문을 따고 들어가 직원들을 쫓아낸 뒤 의자, 테이블, 냉장고, 정수기 등 각종 집기를 부수고 소화기를 터뜨렸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폭력 행위는 지난달 말 사측이 물적분할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열기로 하면서부터 시작돼 산발적이긴 하지만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폭력사태가 잦자 노조 내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조 홈페이지에는 지나친 폭력 행위의 자제를 요구하는 글도 올라왔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집행부는 지난 주총장 점거 때부터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방침을 정하고 조합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지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파업에 참여한 일부 조합원들이 사측과 실랑이를 벌이다 격앙돼 우발적으로 벌인 행위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한편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은 이날도 현장실사가 무산됐다.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를 방문한 실사단은 노조의 정문 봉쇄로 2차 현장실사도 하지 못했다.

[울산 = 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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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위해 산책 나올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 세워 놓으셔” 마음에 민족애 생겨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왼쪽)가 정의여학교에 다닐 때 모습이다.

현모양처(賢母良妻).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상당수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적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1910~20년대 조선땅의 일본인들은 사회의식이 강한 여성이 독립운동을 펼쳐 식민지 조선을 잃을 것에 대비해 계략을 펼쳤다. 여성교육의 목표를 현모양처로 정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은 ‘오덴바(말괄량이를 뜻하는 일본 말)’라고 가르쳤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말괄량이가 아닌, 조용하고 정숙한 여성이 되고자 했다. 그런 까닭으로 김활란 고황경 김마리아 선생 등이 가졌던 애국심은 희미해져 갔다.

일본어와 일본 역사는 배웠지만, 한글과 한국 역사는 배우지 못했다. 일본이 미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전시체제로 들어가면서 일제의 포악성은 더 심해졌다. 창씨개명을 통해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쇠붙이는 모두 공출해갔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을 위한 위문품 주머니인 위문대 만들기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체육 시간엔 목검(木劍)을 배웠다. 오후가 되면 근로봉사로 대동강 모래사장에 나가 땡볕 아래서 리어카에 모래를 실어 나르는 작업을 했고 일본군의 식량 확보를 위해 가을엔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1930년대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도 부엌일을 감당해야 했다. 나 역시 캄캄한 부엌에서 혼자 밥을 지어야 했다. 아궁이에 솔가지를 놓고 신문지 같은 불쏘시개에 불을 붙였다. 성냥을 그어 불이 붙으면 신문지나 솔가지에 가만히 불을 대야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성냥불이 붙자 무서워서 아궁이에 휙 던져 버리곤 했다. 목재상에서 사온 톱밥은 뱅뱅 돌리는 풍구로 바람을 넣어야 불이 붙었다. 적당한 양을 부어 가며 풍구로 바람을 넣어 능숙하게 불을 붙이기까지 족히 1년이 넘게 걸렸다.

정의여자보통학교 시절 소풍으로 학교에서 멀지 않은 대성산 송태에 가게 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거처가 있는 곳이었다. 산에 올라가는 길에 돌더미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작은 돌을 쌓아 놓은 듯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선생님께 여쭸다.

“저 돌더미는 안창호 선생님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산책 나올 때마다 하나씩 세워 놓으신 거란다. 조선의 자주 독립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을 세워 놓으신 거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나는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조선의 독립이라니.’ 그동안 누구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대적 상황들이 뇌리를 스쳤다. 당시 조선장로교총회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주기철 목사님이 출교됐다. 학교에선 선교사이자 교장인 헐버트 선생님이 앞장서 가시면 학생들은 모두 뒤따라 가 신사참배를 하곤 했다. 학교 내에선 일본 말만 해야 했고 일본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들었다. 일본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거나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하면 한국말을 하다가도 입을 닫아야 했다.

‘도산 선생은 얼마나 조선 독립의 열망이 대단하셨기에 이처럼 크고 작은 돌을 하나하나 산책길에 세워 놓았을까. 그래! 나는 조선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 백성이다. 나도 내 나라 독립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이다.’ 처음으로 신념이란 게 생겼다. 가슴에 ‘조선인 주선애’를 확실히 새기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다. 그 신념이 소녀 주선애의 마음에 뿌리내린 민족애였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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